2024. 4. 4. 21:40ㆍreview
제가 입학한 학교의 학과에는 버려진 암실이 있었습니다.
수년째 명맥이 끊어진 과내 사진동아리가 먼지 수북히 쌓인 암실과 함께 방치되어 있었지요.
2학년 선배 한분과 1학년 동기 5인방이 사진동아리를 다시 살려보자고 의기투합하였습니다.
그 5인방 속에 저도 함께 했습니다. 저의 사진 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여름방학 건설현장에서 알바로 번돈 200만원으로 가장 먼저 카메라를 구매하였습니다.
바로 캐논의 EOS 시리즈 필름 SLR카메라 'EOS 5' 였습니다.
(디지털 이미지는 아예 개념도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대학 4년 내내 우리 5인방은 카메라를 매개로 서울을 비롯 전국을 돌며 놀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놀았다는 표현이 아마 더 정확할 것입니다. 참 즐거웠고, 행복했습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1주일 평균 1~2통정도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시간만 나면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갔었죠.
필름 구매비용이 감당이 안되서 코닥 TMAX 100 100ft 롤필름을 공동구매해서 서로 나누어 사용하였습니다.
다행히 현상, 인화에 필요한 약품이나 인화지는 학과에서 지원해주어 그 부담은 다소 덜 수 있었습니다.

제가 지금 갖고 그 당시를 추억할만한 자료는 이것이 유일합니다.
(혹시 찾아보면 시골집 어딘가에 더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흑백필름을 밀착인화해 놓은 것입니다.
네가티브필름을 밀착인화해 두는 것은 셀렉을 하거나 보관을 위해 또는 암실에서 후보정을 위해 현상 후에 항상 해오던 작업이었습니다.
그렇게 우리 5인방은 수많은 날들을 암실에서 화학약품과 밤을 세우며 보냈습니다.
졸업준비로 바빠지기 시작한 4학년을 제외하고는 사진은 제 대학생활내내 함께 했던 소중한 추억입니다.
봄과 가을, 해마다 두번의 전시는 우리 기수 이후로 많은 후배들에게도 이어졌습니다.
우리 사진동아리는 더 많은 후배들이 함께하여 제가 졸업할 때에는 30여명은 되었던것 같습니다.
그 당시 제 기억 속의 우리에게 중요했던 사진의 의미는 '결정적 순간'이었습니다.
증명사진은 필요에 의해 찍지만, 셀카라는 개념도 없던 시절이었죠.
우리 사진들의 대부분은 (연출은 거의 없는) 다큐와 스냅 사이의 그 어딘가에 있었던것 같습니다.
디지털로 전환된지 20여년이 지났고,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시작한지 10년이 넘었습니다.
지금 우리 모두가 사진이미지의 생산자이며, 소비자가 되었습니다.
전시장이나 앨범에서나 소비되었던 사진의 유통도 지금은 완전히 다른 환경입니다.
요즘 제게는 '소통의 수단'이자 '언어의 대체재'로서 사진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오는 것을 실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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