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5. 17. 11:31ㆍreview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옌렌커, 웅진지식하우스

정상의 모습은 비정상으로 빨려들어가고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다.
소설속 비정상은 다른 시공간에서는 정상의 모습일 수 있다. 이 비정상의 묘사는 전체주의에 대한 깨달음인가, 사랑인가 아니면 동물적 욕망인가.
사회주의 학습의 적극분자인 두 남녀는 깨닫는다. 개인에게 스며드는 솔직한 감정을.
그러나 그것은 금기이다.
기존사회질서에 대한 위반이고, 사회주의에 대한 배반이다.
"인생이 원래 유희인지 아니면 유희가 인생을 대신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어쩌면 유희와 인생이 서로 구별할 수 없이 한데 뒤섞여 하나로 합쳐진 것인지도 모른다. 사회가 부여해준 배역이 인간인지 아니면 사회가 인간의 무대인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사회가 바로 무대이기 때문에 인간은 필연적으로 배우가 될 수밖에 없는 건지도 모른다."
"인간의 운명이란 항상 쾌락이 극에 달하면 슬품이 생기고 극도의 격정 뒤에는 항상 긴 적막과 우울이 잠재되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주인공 우다왕은 지위상승과 도시인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버리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마지못해(?) 혹은 불가피하게 일탈을 시작한다. 이것은 목적을 위한 수단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일탈은 두 남녀를 사랑과 쾌락으로 빠지다가 마치 죽어있던 세포를 다시 깨우듯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게 되는가 하면 끊을 수없는 마약처럼 들러붙는다. (이것은 성공과 성애를 하나로 연결하는 우다왕의 부인 자오어즈와는 다른 점이다.) 우다왕과 류렌은 서로를 사랑하고 갈구하며 때로는 불안을 동반하지만 결코 무한하지 않은 일탈을 지속한다.
이 책에서 명확하고 단순하게 전체의 주제를 묘사하는 부분이 있다. 사회주의 혁명의 상징인 마오쩌둥과 그의 명언들을 두 남여가 그들의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짓밟고 깨부수는 장면이다. 사랑은 분명 개인간의 사건이고,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대명제는 사회주의 관점에서 보면 금기인 것이다. 다수의 인민들에게 사회주의의 완성을 위해서는 개인의 희생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옌렌커는 '당시의 절대적 명제인 혁명완수를 해체하고 개인의 욕망을 대체시킴으로서 개인의 존엄을 위해,,' 이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는듯 혁명의 상징을 깨뜨리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현실과 이상, 혁명과 개인의 욕망 사이, 즉 이 고민스러운 경계 안을 확대하여 세밀하게 표현한다. 그리고 자연스럽다. 소설의 주인공 우다왕은 그 모호하고 흐릿한 영역 속에 서서 고민하지만 결코 개인의 이상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두 사람 모두 언제 울음을 멈췄는지, 사랑의 파도가 언제 각자의 마음속에서 서서히 퇴조했는지, 위대함과 신성함이 언제 일상성으로 변해버렸는지, 성스럽고 순결한 흰 천이 결국 언제 걸레로 변하는 여정을 밟기 시작했는지 의식하지 못했다. 우다왕은 류렌의 말을 지나치게 두려워하지도, 감히 불신하지도 않았다. 단지 군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필연적으로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깊이 체감할 뿐이었다."
끝부분는 아주 희극적이다. 사단장 부인과 간통을 했는데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혁명의 공을 인정받는다니,,, 재미있는 것은 이 모든 것들이 개인의 노력이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시스템이란 이런 것임을 희화한 것이 아닐까.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바라는대로 될수도 있고, 그 반대인 경우일 수도 있다. 이것 모두 받아들여야 하는 개개인들의 반응은 코믹스럽다.
책을 덮고 나니 문득 이런 의문이 든다. 이들은 정말 서로 사랑했던 것일까. 마지막 장면에서 그런 의심이 강하게 든다. 주제에서 벗어날 수도 있겠지만 류렌의 관점에서 쓰여진 소설도 나왔다면 흥미로웠으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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