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5. 6. 16:59ㆍreview
마네, 조르주 바타유, 문학동네

회화의 역사에서 마네라는 이름은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마네는 그저 한 사람의 매우 위대한 화가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그에 앞선 화가들과 단절했고, 우리가 사는 세계를 열었다. 그는 지금의 세계, 우리의 세계와 어울리되, 자신이 살며 스캔들을 일으킨 세계와는 어울리지 못했다. 마네의 회화가 일으킨 돌연한 변화, 그 날카로운 전복에는 혁명이라는 이름이 적절할 것이다. 오해의 소지가 없다면 말이다. 마네의 회화가 의미하는 정신의 무대전환은 적어도 본질적인 면에서는 정치사가 기록하는 변화들과 다르다. (p29)


"나른한 <우르비노의 비너스>와 달리, <올랭피아>의 현존은 인물을 일으켜 세웠다. 전자에서 후자로 가는 작은 움직임은 머리를 세우고 팔꿈치를 들어올리며 실제 존재인 양 정면을 바라보는 시선을 고정시켰다. 화면 안쪽을 두 부분으로 나누는 왼쪽의 칸막이, 왼쪽 구석의 천 등 핵심장식은 그대로인다. 하녀는 실제로 우리 쪽을 향한 채, 감히 말하자면, 여주인의 침대 쪽으로 다가서 있다. 우윳빛 분홍색 옷과 대비되는 그녀는 누구보다 아름다운 검은빛의 여인이다. 침대 끝에 둥글게 엎드려 있던 개는 스스로 일어섰고, 이 움직임과 함께 검은 고양이로 바뀌었다. 이런 변화는 그 자체로는 사소한 것들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의 이행을 나타낸다. 신화의 세계는 품격을 간직하고 있었고, 이 품격은 그것을 어쨌거나 신학의 세계에 동화시켜주었다. 그것은 경감된, 날카로운 의미를 떨쳐낸 하나의 변이형에 불과했지만, 여전히 시적 위엄의 흔적을 갖고 있었다." (p80)
마네의 회화가 스캔들을 일으킨 것은 마네의 파괴가 보여준 결연한 생경함이다. 그 경직성은 우리를 매혹하거니와, 이제 예술은, 예전에 주권적 형상들의 위대함을 이루던 합의된 감정의 위엄을 대체하는 지고의 가치(또는 지고의 매혹)를 추구한다. 스캔들을 일으킨 것은 수많은 규약에 묶어놓은 끈으로부터 해방된 단도직입적인 인간성이다. <올랭피아>를 바라볼 때 우리를 지배하는 것은 말소의 감정이다. 순수한 상태, 곧 웅변이 산출한 거짓에 얽는 끈을 주권적으로, 침묵으로 끊어버린 존재의 상태가 행사하는 매혹의 정확함이다. (p79)
[마네는 신화적 주제를 치환하여 현실세계로 옮겨놓는다. 과거의 위엄을 대체하는 규칙들을 끊어낸다. 이것이 마네가 표현하는 절연의 방식이다. 우리는 그림을 감상하며 배경, 상황, 구조, 의도 등에 대한 해석을 내놓는다. <올랭피아>에서는 "사회의 남루한 비밀의 힘과 공공연한 현존"이나 "절대적인 벌거벗음에 바쳐진, 짐승같은 처녀인 그녀는 대도시의 매춘일과 풍습 속에 감춰지고 보존된 모든 원초적 야만과 제의적 동물성을 꿈꾸게"와 같은 텍스트로 연결한다. 그러나 조르주의 그림이 의미하는 것은 텍스트가 아니라 그 지워짐이라는 것이다. 즉 마네의 사실주의는 침묵함으로서 아무데도 위치시키지 않는 힘을 가졌다고 말한다.]
"풀밭위의 점심에서 시작된 노력은 완료되었다. 완만한 준비과정이 마무리된 것이다. 테크닉과 빛의 신성한 유희, 현대회화가 탄생했다. 그것은 장식물들의 삭제 가운데 되찾은 위엄이다. 그것은 아무나, 그리고 벌써 아무것이나의 위엄이다,,,. 그것은 이제 더이상 아무런 인과관계도 없이 있는 것에 귀속되는 위엄이고, 희화의 힘이 드러내는 위엄이다."
<튈르리정원 음악회><풀받위의 점심><올랭피아>는 단계적 양상의 발전을 보여주거니와 바타유가 거기서 읽어내는 요소는 크게 세가지이다. 첫째, 마네는 미리 정해진 회화의 규약을 통해 기존의 가치를 표현하는 대신 현재 자기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리려고 했다는 점, 둘째, 회화가 하나의 웅변적 담론이 되게 하는 대신 설정한 주제를 파괴함으로써, 달리 말해 스스로 유발한 기대를 저버림으로써 회화를 침묵의 차원에 위치시킨다는 점, 셋째, 회화를 주제로부터 벗어나게 함으로써 그것에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성격과 위상을 부여하며 주권의 차원으로 옮겨놓는다는 점이다. - 옮긴이 송진석 「마네와 바타유, 예술과 주권」중에서

*인물
빅토린 뫼랑(Victorine Louise Meurent)[올랭피아의 주인공이기도 함], 쉬잔 린호프(Suzanne Leenhoff)[마네의 음악선생이자 애인, 1863 마네와 결혼, 아버지의 애인이기도 하고 퍼디난 린호프를 낳음], 마네의 동생 외젠 마네(Eugene Manet)와 처남인 퍼디난 린호프(Ferdinand Leenhoff)

"비의미차원으로의 진입, 차용, 현실로 치환, 보이는 것, 주제의 파괴, 웅변의 거부, 침묵의 차원으로 위치"
이 책을 통해 이해할 수 있는 마네 회화만의 고유성이다. 그리고 바타유가 해석하는 마네 회화속에서 발견한 유의미한 점이다.
압축하면, 의미의 파괴, 의미로부터 해방이라는 주제를 마네는 자신의 회화를 통해 보이고자 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술의 전통적 가치였던 기호와 규범을 따르지 않는 길을 선택하였다. 그런 면에서 바타유의 사상의 핵심인 전복적 사유, 금기의 위반 같은 주제와 상당부분 통하고 있다. 내용이 조금은 익숙치 않아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현대회화의 출발은 마네와 함께 시작되었다는 해석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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